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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기계시대>, 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맥아피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들
카스파로프는 불가리아의 그랜드 마스터인 베셀린 토팔로프(Veselin Topalov)와 펼친 대국을 기술하면서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당시 그들은 대국을 펼치면서 자유롭게 컴퓨터를 참조 할 수 있었다. 카스파로프는 "둘 다 같은 데이터베이스에 동등하게 접 근했으므로, 어느 시점에서 새로운 착상을 떠올리느냐에 따라 판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직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일들의 사례를 죽 훑어볼 때면, ‘새로운 착상’이라는 개념이 계속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아직 진정으로 창의적인 기계나 모험적인 기계나 혁신적인 기계를 본 적이 없다. 운율을 지닌 영어 문장을 지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본 적이 있지만, 진정한 시(워즈워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요한 가운데 떠오르는, 저절로 흘러넘치는 강한 감정")를 지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아직 못 보았다. 산뜻한 산문을 지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탄생은 놀라운 성과이지만, 더 이어서 무엇을 써야 할지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또 우리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본 적 없다. 지금까지 그런 시도들은 처참한 실패를 거듭했다.
컴퓨터가 못하는 이 활동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디어 떠올리기(ideation), 즉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생각해내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훌륭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단어 같은 기존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도록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런 조합은 어떤 의미를 지닌 재조합 혁신이 아니다. 그것은 100만 년 동안 타자기를 제멋대로 마구 두드리고 있지만, 아직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편도 복사하지 못하고 있는 원숭이들로 가득한 가상의 방의 디지털 버전에 가깝다. 다양한 아이디어 떠올리기야말로 현재 인간이 기계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영역이다. 과학자는 새로운 가설을 떠올린다. 기자는 좋은 기사를 구상한다. 요리사는 식단에 새 요리를 추가한다. 공장 바닥에 서 있는 공학자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낸다. 애플의 직원들은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태블릿 컴퓨터가 어떤 종류일지를 구상한다. 컴퓨터는 이 활동 중 많은 것들을 지원하고 촉진시키지만, 그 활동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피카소의 말은 절반만 옳다. 컴퓨터는 쓸모없지는 않지만, 여전히 답을 내놓는 기계로 남아있다. 흥미로운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말이다. 새 질문을 하는 능력은 아직 인간만의 것인 듯하며, 여전히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잘 떠올리는 사람들이 당분간은 디지털 노동자보다 계속 비교 우위에 있을 것이고, 그들을 원하는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고용인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당분간 재능 있는 사람을 뽑고자 할 때, 계몽운동가인 볼테르가 했다는 조언을 따를 것이라고 본다. "어떤 답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하느냐로 사람을 판단하라."
아이디어 떠올리기, 창의성 혁신을 영어로는 흔히 "상자 바깥에서 생각하라(thinking outside the box)"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인간이 이 분야에서 디지털 노동자보다 꽤 오래 상당한 우위를 누릴 것임을 시사한다. 컴퓨터와 로봇은 프로그래밍된 틀 바깥에 놓인 일은 여전히 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왓슨은 〈제퍼디!〉에서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지만, 왓슨을 만든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상당 부분 다시 짜지 않는 한,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 〈더 프라이스 이즈 라잇The Price is Right〉 등 다른 TV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어린아이와 싸워도 질 것이다. 왓슨은 스스로 알아서 출연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왓슨의 배후에 있는 IBM 연구진은 다른 게임 쇼들을 정복하는 대신, 의료 등 다른 분야들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물론 그 분야 들에서도 왓슨의 활동은 정해진 틀에 한정될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해둘 것이 있다. 왓슨이 궁극적으로 탁월한 의사가 될 것이라고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은 인간 진단학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켄 제닝스, 브래드 루터 같은 <제퍼디!〉 인간 참가자들을 물리칠 만큼 왓슨의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었듯이, 우리는 곧 닥터 왓슨이 진단이라는 경기에서도 실제 인간 의사들뿐 아니라, 닥터 웰비와 닥터 하우스 같은 미국 드라마 속의 명의들까지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물론 컴퓨터가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추론을 하고, 기존 사례들로부터 추정을 하여 많은 사례들을 규명할 수 있긴 하겠지만, 인간 진단학자는 닥터 왓슨이 의학 훈련을 모두 마친 뒤에도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색다르고 특수한 사례들이 불가피하게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고속도로의 정상주행 조건에서 운전하는 차보다 모든 조건에서 100퍼센트 자율 주행하는 차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듯이, 가능한 모든 의학 사례들을 다룰 수 있는 기계 기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가장 흔한 사례들을 다루는 시스템을 구축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체스의 사례에서처럼, 닥터 왓슨과 인간 의사는 각자 혼자 일하기보다 협력하는 편이 훨씬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미래학자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로봇과 얼마나 잘 협력하느냐에 따라 보수가 달라질 것이다."
인간의 장점 알아차리기
이렇게 컴퓨터는 자신의 틀 안에서는 패턴 인식을 아주 잘 하는 반면 그 바깥에서는 정반대다. 이 점은 인간 노동자에게는 희소식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감각을 지닌 덕분에, 본질적으로 디지털 기술보다 훨씬 더 넓은 틀을 갖고 있다. 컴퓨터의 시각과 청각, 심지어 촉각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고 있긴 해도, 우리의 코와 혀에 비하면 아직 멀었으며, 우리의 눈, 귀, 피부가 그에 상응하는 디지털 감지기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들도 아직 많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우리의 감각기관들 및 그와 긴밀하게 연결된 뇌라는 패턴 인식 엔진은 우리에게 더 폭넓은 틀을 제공할 것이다.
스페인 의류회사 자라(zara)는 이런 이점을 적극 활용한다. 자라는 컴퓨터 대신 인간의 판단을 바탕으로 어떤 옷을 만들지를 판단한다. 대부분의 의류업체들은 옷을 실제로 상점에 내놓기 몇 달 전에 조사하여 얻은 통계 자료를 토대로 수요를 예측하고 판매 계획을 세운다. 자라는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자라는 주로 십대와 청년층을 겨냥한 유행에 맞는 저렴한 옷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을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이런 옷들은 금방 유행했다가 금방 시들해지므로, 자라는 유행하는 옷을 아주 빨리 만들고 운송할 수 있도록 공장과 창고를 배치했다. "어느 옷을 만들어서 각 매장에 보내야 할까?"라는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라는 전 세계의 매장 판리자들에게 주문을 정확히 하도록 하고, 그런 다음 며칠에 걸쳐 그 지점에서 팔릴 만한 상품만을 만들어 보낸다.
매장 관리자들은 알고리듬을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고객(특히 멋지게 차려 입은 고객)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관찰하고 또한 어떤 옷을 좋아하고 어떤 옷을 찾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서 필요한 정보를 상세히 파악한다. 자라 매장 관리자들은 많은 시각 패턴을 인식하고, 소비자와 복잡한 의사소통을 하며, 그 모든 정보를 두 가지 목적에 이용한다. 폭넓은 입력 틀을 써서 기존 옷들을 주문하는 데 이용하고, 자기 매장에서 어떤 새 옷이 인기를 끌지를 본사에 알려줌으로써 그를 바탕으로 디자인이 나오도록 돕는다. 자라는 현재로서는 사람 기반의 주문 방식을 기계 기반의 주문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 없으며, 우리는 그들이 아주 영리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 인식, 가장 복잡한 형태의 의사소통이라는 인지 영역에서는 인간이 여전히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도 당분간 그 우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교육 환경은 이런 기능들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초등 교육은 사실들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토리당 국회의원인 월리엄 커티스(William Curtis) 경이 1825년 경에 ‘3R‘이라고 이름 붙인 읽기(reading)와 쓰기(writing)와 셈하기(arithmetic) 기능을 숙달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기계라면, ‘3R‘처럼 기억하기 좋지만 학술적으로는 부정확한 별명을 붙일 가능성이 낮다).
기능 교체하기, 학교 교체하기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몇몇 적정 기술만 제공해도 스스로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바 있는 교육학자 수가타 미트라(sugata Mitra)는, 학교에서 왜 암기 학습을 강조하는지 도발적인 설명을 내놓는다. 그는 2013년 미국의 비영리재단이 정기적으로 주관하는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에 관련된 TED 총회에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00만 달러의 TED 상금을 받았는데, 당시 강연에서 사람들이 언제 왜 이 기능들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나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이런 종류의 학습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찾아보려고 애썼습니다……. 그것은 이 지구의 마지막 제국이자 가장 컸던 제국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대영제국이었어요. 그들이 한 일은 놀라웠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 컴퓨터를 만들었지요. 그 컴퓨터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바로 관료주의적 행정 기계(bureaucratic administrative machine)라는 것이지요. 그 기계를 가동하려면, 아주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 또 다른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는 관료주의적 행정 기계의 부품이 될 사람들을 생산하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세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글씨를 잘 써야 합니다. 자료를 손으로 쓰기 때문이지요. 또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곱셈, 나눗셈, 덧셈, 뺄셈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뉴질랜드에서 어느 한 명을 골라서 배에 실어 캐나다로 보냈을 때 즉시 제 기능을 할 수있을 만큼 동일한 기능을 갖추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설명을 좋아한다. 인간을 컴퓨터와 기계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설명을 좋아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3R이 과거에 노동자들이 당시의 가장 발전된 경제에 기여하는 데 필요한 기능들이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미트라가 지적하듯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교육 체제는 당시의 시대와 장소에 아주 적합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시간과 장소에 있지 않다. 미트라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대단한 공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견고한 체제를 만들어냈지요. 지금도 우리 곁에 있으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계를 위해 일할 똑같은 사람들을 계속 생산할 만큼 견 고한 체제이지요…… (오늘날에는) 컴퓨터가 서기입니다. 그들은 모든 사무실에 무수히 널려 있지요. 그리고 그 컴퓨터가 서기 일을 제대로 하도록 안내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은 손으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곱할 능력을 갖출 필요도 없지요. 읽을 수 있는 능력은 필요합니다. 사실 똑똑 끊어서 읽을 수 있어야 하지요.
미트라의 연구는 아이들, 심지어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 조차도 또박또박 읽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모둠을 짜서, 기술을 사용해 관련 정보를 폭넓게 검색하고, 서로에게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토의하도록 하면, 이윽고 새로운(그들에게)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그것들이 옳은 것일 때가 아주 많다는 점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아이디어 떠을리기, 큰 틀의 패턴 인식, 복잡한 의사소통의 기능을 습득하고 실제로 적용한다. 따라서 미트라가 관찰한 ‘자기 조직적 학습 환경(SOLE, self-Organizing Environment)‘은 디지털 노동자에 비해 더 유리한 위치에 서도록 해줄 기능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듯하다.
이 말에 그리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기 조직적 학습 환경은 한참 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고, 기계와 함께 달리는 일을 잘하는 많은 사람들을 양산해왔다. 20세기 초에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연구자인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는 현재 그녀의 이름이 붙어 있는 초등 교육 체계를 개발했다. 몬테소리 수업은 자기 주도 학습, 다양한 교재들(식물과 동물도 포함하여)과의 직접 접촉, 대체로 느슨하게 짜인 수업 일정을 강조한다. 그리고 최근에 몬테소리학교는 구글(래리 페이지와 세 르게이 브린), 아마존(제프 베저스), 위키피디아(지미 웨일스)의 창업자들을 비롯한 졸업생들을 배출해왔다.
이 사례들은 더 폭넓은 추세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경영학자 제프리 다이어(Jesrey DFr)种 델 그레거슨(H선 Gregersen)은 저명한 혁신가 300명을 면담했는데, 그들 중에 몬테소리학교에 다닌 사람의 비율이 유달리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따르라고 배웠다."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의 블로거 중 한 명인 피터 심즈(Peter Sims)는 이렇게 요약했다. "몬테 소리 교육 방식은 창의적인 엘리트층에 합류하는 가장 순수한 경로일지 모른다. 엘리트층에 그 학교 출신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므로, 몬테소리 마피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다."
이 마피아에 속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엔디는 자기 조직적 학습 환경의 힘을 보증할 것이다. 그도 학창 시절 초창기에 몬테소리학교를 다녔으며, 다음과 같은 페이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규칙과 질서를 고지식하게 따르지 말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질문을 하고, 남과 좀 다르게 행동하라는 것이 교육의 일부였다"
'새로운 기계 시대에 가치 있는 지식 노동자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직설적으로 권고한다. 단지 3R을 배우는 대신에 아이디어 떠올리기, 큰 틀의 패턴 인식, 복잡한 의사소통의 기능들을 갈고닦으라. 그리고 가능할 때마다자 자기 조직적 학습 환경을 이용하고, 이 기능들의 발달 과정을 기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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