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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씽크>, 스티븐 폴
38~44
현대인에게 바쁘고 혼란스러운 생활에 맞는 최신, 첨단 심리요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빈번하게 감정과 개인사를 조사하는 프로이트식 심리치료법은 임상적 효능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렇게 자주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현재 활용되는 요법은 거의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축약할 수 있는 일련의 규칙과 자기계발 기법들로 구성된 인지행동치료다. (실제로 컴퓨터로 실행되는 경우도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공포와 불안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부정적인 사고패턴을 스스로 인지하고 더욱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사고를 대체하도록 유도한다. 가령 대인관계에서 불쾌한 경험을 하고 나면 '내가 호감을 느끼는 유형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항상 불쾌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 경우 인지행동치료는 초기 인식을 중립적으로 재설정하도록 만들고('어쩌면 상대방이 다른 일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라서 무례하게 굴었을 수도 있어.'), 부정적인 자기 인식에 근거한 '집약'적인 결론으로 건너뛰는 습관에 저항하도록 만든다. 이 방식은 임상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예를 들어 영국의 국립임상연구원은 확실한 대화요법으로 인지행동치료를 권장하기도 했다. 인지행동치료는 말 그대로 '증거기반' 요법으로서 철저히 현대적이지만 과학 이전 시대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인지행동치료의 기원이 된 영감이 현재 나름의 방식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나는 매일,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다.'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의 절정처럼 들리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주문은 프랑스의 약사로서 자기계발서를 통해 최초로 세계적인 명사가 된 에밀 쿠에Émile Coué라는 흥미로운 인물에게서 나왔다. 그는 <자기암시>라는 책으로 192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긍정적인 주문을 반복하면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을 개선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태도인 '자기암시'를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심쩍은가? 쿠에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의 뇌가 행동을 좌우하는, 생각, 습관, 본능에 해당하는 못을 박는 널빤지라고 가정하라. 나쁜 생각이나 습관 혹은 본능, 말하자면 나쁜 못이 존재한다면 좋은 생각이나 습관 혹은 본능, 말하자면 나쁜 못이 존재한다면 좋은 생각이나 습관 혹은 본능을 그 위에 놓고 망치로 두들겨라. 다시 말해 자기암시를 하라. 새 못이 들어가는 만큼 오래된 못이 빠져나온다. 망치로 두들길 때마다, 다시 말해 자기암시를 할 때마다, 새 못은 더 들어가고 오래된 못은 더 빠져나온다. 그래서 일정한 횟수만큼 망치질을 하면 오래된 못이 완전히 빠지고 새 못으로 대체된다. 이런 대체가 일어나면 그에 따라 사람도 변한다."
이는 현대식 인지행동치료의 이면에 있는 생각과 같다. 두 요법은 모두 저절로 생겨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인지하고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적절한 반응으로 대체함으로써 나쁜 생각을 완전히 몰아내도록 유도한다. 이 방식은 쿠에와 동시대 인물로서 심리치료 분야에서 '이성적 설득' 학파를 만든 신경병리학자 폴 뒤부아Paul Dubois가 추구한 치료 원칙이기도 했다. 그는 이 원칙을 다름 아닌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에게 적용했다. 초점을 맞춘 이성적 노력('인지')을 통해 감정적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 원칙은 이미 2,000년 전에 개발되었다. 그 주인공은 스토아 철학자들이었다. 이제 그들도 되돌아오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쓰는 '스토아주의적(금욕적)Stoical'이라는 단어는 스폭Spock(<스타트랙> 시리즈에 나오는 등장인물 - 옮긴이)처럼 엄격하거나, 절제되어 있거나, 불평 없이 고통을 감수하거나, 심지어 감정이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보다 쾌활했다. 혹은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스토아 학파는 키프로스의 섬 도시 키티움 출신의 제노Zeno가 아테네에서 창시했으며, 에픽테토스Epictetus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글들을 남겼다. 그 핵심 사상은 "인간은 어떤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시각 때문에 불행해진다."는 에픽테토스의 말로 잘 표현된다. 다시 말해서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감정은 바꿀 수 있다.
약 2,000년 후인 1962년에 합리적 정서행동치료의 창시자이자 아론 벡Aron Beck과 함께 현대적 인지행동치료 분야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가 사람은 어떤 대상이나 사건이 아니라 '외부의 대상 및 사건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 혹은 내면화된 문장'에 영향을 받는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여기서 '내면화된 문장'은 에밀 쿠에가 말한 무의식적 자기암시, 즉 좋은 못으로 몰아내야 하는 나쁜 못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엘버트 앨리스도 쿠에의 책을 읽었다.) 엘리스는 "이 원칙은 원래 스토아 철학자들이 발견하고 언급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아론 벡도 다음과 같이 자신이 추구하는 요법의 역사적 기원을 분명하게 밝혔다. "인지요법의 철학적 기원은 스토아 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각을 바꾸면 강렬한 감정도 통제할 수 있다."
현대에 인지행동치료가 인기를 끈 데 따른 가장 놀라운 효과는 고대 스토아주의 자체의 부활일지도 모른다. 현재 엑서터 대학은 해마다 런던에서 '스토아 주간' 행사를 연다.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이 행사에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대담과 워크숍을 통해 스토아 철학을 읽고, 수련법을 연습하며, 설문에 참여한다. 생물학자이자 철학자, 신스토아주의자인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는 2014년에 "일주일에 걸친 수련 후 참석자들의 긍정적 감정이 9퍼센트 늘어났고, 부정적 감정이 11퍼센트 줄었으며, 삶에 대한 만족도가 14퍼센트 높아졌다."고 밝혔다. (꾸준히 수련하는 사람들에 대한 장기적인 조사 결과도 초기 결과를 확증했다.)
원래 수립된 스토아주의는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종류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원칙과 몇 가지 구체적인 기법은 흡사했지만 스토아주의는 (일부 심리치료사는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대 요법에 수용되지 않은 몇 가지 명상법뿐만 아니라 논리적, 형이상학적 체계까지 포괄한다. 심리치료사이자 <인지행동치료의 철학The philosophy of Cognitive-Behavioural Therapy>을 쓴 도널드 로버트슨Donald Robertson은 스토아주의 서적들이 "대부분 현대 인지행동치료와 부합하는 여러 구체적인 심리적 기법 내지 수련법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전히 유요한데도 일부는 잊히거나 간과되고 있다."고 썼다. 가령 그는 죽음에 대한 체계적 명상법 혹은 (그리스어로) ‘멜레테 타나투Melete thanatou’라는 명상법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현대에 이뤄진 일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인식은 신체건강을 개선하고, 성장 중심의 목표를 우선시하고, 글정적인 기준과 신념에 따라 살고, 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평화롭고 자애로운 공동체를 개발하고, 개방적이고 성장을 중시하는 행동을 촉진할 수 있다." 로버트슨이 직접 되살린 또 다른 기법은 "아주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듯" 폭넓은 관점에서 사태를 조망하여 사소한 걱정을 떨쳐낸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보여준 뛰어난 사례처럼 매일 아침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도 유용하다. "오늘도 고마움을 모르고, 폭력적이고, 기만적이고, 질투심 많고, 몰인정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나를 잘못된 일로 끌어들이지 못하므로 내게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또한 나는 가족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또 계속해서 넓어지는 소중한 존재들의 원 안에 자신이 있다고 상상하는 '히에로클레스Hierocles의 원'이라는 명상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이 원은 가족 및 친구로부터 시작하여 이웃, 같은 도시 주민, 동포, 전 인류, 나아가 자연계 전체로 넓어진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수련은 당신에게 생길 수 있는 나쁜 일들을 생각한 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Premeditatio malorum'일 것이다. 가령 심각한 부상이나 감정적 좌절을 겪는 상황을 상상하고 '덜 선호하는 무심Dispreferred indifferent'으로 대하는 것이다. 즉,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는 편이 더 좋지만 생긴다 해도 도덕적 가치관이나 도덕성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심'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피글리우치는 이 수련이 "인지행동치료에서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활용하는 요법과 아주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끝으로 세네카Seneca처럼 저녁에 다음과 같은 엄격한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질 수 있다. "오늘 어떤 나쁜 버릇을 고쳤는가?" "어떤 잘못에 맞섰는가?" "어떤 면에서 더 나아졌는가?"
보다시피 스토아주의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며, 안락하지도 않다. (실제로 니체는 스토아주의를 '자기 폭압self-tyranny'이라 불렀다.) 그러나 비행기와 휴대폰이 존재하는 지금도 스토아주의를 2,500년 전만큼이나 일상생활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 스토아 학파의 모든 신조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가령 그들은 창조적 영성의 발현인 로고스Logos라는 원칙이 우주를 관장한다고 믿었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일부 현대 물리학자들은 이런 개념을 마다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스토아 학파는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편이었다. 그들은 노예들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놀라울 만큼 범세계주의를 추구했다. 에픽테토스는 모두가 두 세계의 시민이라고 말했다. 즉, 인접한 정치 공동체에 해당하는 '작은 도시'의 시민일 뿐만 아니라 전체 우주에 해당하는 '거대한 도시'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스토아 철학은 이성의 거대한 동력원이다. 그래서 거대한 구도 안에서 우리가 처한 자리에 대해 다른 시각, 말 그대로 하늘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취하도록 권유하며, 인지가 감정을 통제할 수 있고 생각의 힘이 자신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환경과 기술은 변한다. 그러나 2,000년이라는 시간은 진화의 관점으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해서 인간의 정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포켓스토익PocketStoic'이라는 스마트폰 앱처럼 고대의 전통을 현대인에게 맞도록 되살릴 수 있다. 혹은 불교나 도교의 명상법에서 취한 접근법으로, 심한 압박을 받는 현대의 직장에서 생산성과 행복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인기를 얻은 '마음 챙김'처럼 고대의 전통을 화려하게 재포장할 수도 있다. 과거의 요법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래된 아이디어는 전쟁과 의학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보기보다 유효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특공대와 소년의 귀에서 피를 빠는 거머리 그리고 수천 년 전에 개발된 강력한 자기계발 기법의 현대적 재발견은 모두 현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는 가정에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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